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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07 23:07:45
Name 요정 칼괴기
File #1 b0052733_4771b52f763b3.jpg (92.2 KB), Download : 53
Subject [일반] 1차 대전사(5)- 국경전투(1)


(1) 플랜 17
독일에게 슐리펜 계획이 있었다면 프랑스에게는 플랜 17이 있다는 사실은 전에 언급했습니다.

독일은 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프랑스 역시 슐리펜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프랑스 계획 즉 플랜 16의 경우에 대한 프랑스의 수는 이것이었습니다.


- 국경의 요새지대와 산과 강을 믿고 여기를 방어한 후 다수의 병력은 벨기에에서 독일군과 싸운다.-

하지만 플랜 17은 달랐습니다.
- 독일이 전선을 길게 늘렸으면 우리 프랑스는 독일군 좌익과 중앙에 이 병력을 집중해서 공격을 가해 독일 군의 전선을 두동강이 낸다.-

이는 직접 드 카스텔로가 지도의 길이를 자로 대어 가면서 수립한 계획이었습니다.
독일군의 슐리펜 계획은 벨기에-독일국경 중 가장 좁은 곳- 마스트리히트 회랑-에 대군을 밀어 넣어 큰 원을 그리며
프랑스의 배후를 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높은 병력 밀도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교통 체증 때문에
행군 속도는 바닥을 길터였습니다. 독일군이 무익하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프랑스 군은 독일의 약한 곳을 친다면
독일은 프랑스 국경에 오기전에 프랑스 군에게 독일 국경 상당 부분을 내어 줄 테고 독일의 후방은 프랑스 군에게
노출 될 터였습니다.

현실은 전에 서술했듯이 슐리펜 계획+7 수준에서 독일군은 이 회랑을 돌파해서 벨기에 프랑스 국경에 나타났지만요.

덧붙이면 프랑스의 이런 노림수 역시 독일군은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슐리펜은 차후 동원되는 예비군 가지고 막을 생각이었고
이게 못미더웠던 소 몰트케는 다수의 병력을 이 지역에 배치했습니다.

그럼 프랑스는 왜 이렇게 작전 계획을 바꾼 걸까요?

기본적으로 보불전쟁의 여파 때문이었습니다. 보불 전쟁은 프랑스 입장에서 치욕이었습니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
잡히고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프로이센 군에게 일방적으로 깨졌습니다. 그리고 자국령인 알자스-로렌도 뺏겼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는 복고주의로 돌아 가고 있었고 군부 역시 이 시대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전처럼 승리를 위한 프랑스의 정신 즉 영광(la Gloire)을 위한 갈망과 열정을 다시 찾기 위해 군대의 사고와 전략, 전술까지 전부
수정했습니다.

이런 승리에 대한 열정은 바로 공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열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내가 주도해야 하며, 주도한다는 건 즉
[공격]! 그 외에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베르그송의 철학 용어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그게 그유명한
[생의 약진!(elan vital)]이었습니다. 이에 맞지 않는 나약한 수비적인 Plan 16이 폐기된 이유도 이 측면에서 당연했습니다.


<앞으로 1차 대전사에 주구장창 나올 포슈>
이 공격지상주의 창안자는 육군대학 교장 페르디낭 포슈였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격언을 남겼는데
이는 계속 회자되는 말입니다.

[정복의지는 승리의 첫째 조건이며 승리 그것은 의지이다.]
[승리한 전투란 당사자가 졌다고 인정하지 않는 전투]

이 두가지 격언이 사실상 앞으로 설명할 국경전투의 대패와 마른강의 기적을 일구는 양면성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전략적으로 프랜 17은 프랑스 치욕의 상징 알자스 로렌을 수복하고 이걸 기점으로 베를린으로 일직선으로 진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건 1913년 새 야전 교범이었는데 그 첫머리는 이렇게 되어 잇었습니다.
[프랑스 군은 예전의 전통을 회복하여 앞으로는 공격 외의 어떠한 법도 인정하지 않는다!]
교범 속에는 화력 전개라든지 기동력 이딴 건 아주 사라졌습니다. 오로지 공격, 담력, 용기, 적의 의지 분쇄 같은 추상적인
단어만 남발 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장 1911년 참모총장 미셸 장군은 로렌을 단기간 점령하는 건 지형상 택도 없으니 그냥 방어로 바꾸자고 주장하지만 포슈의 제자들은
그 안을 저주라고 낙인 찍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미셸은 정규 사단 안에 예비군 연대를 배속함으로써 유효 병력을 늘릴 것을 요구했지만 마찬가지로 [예비군은 무용지물
Les reserves, c'est zero!]
라고 거부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예비군은 2선과 요새방어에나 쓰일 것으로 결정되고 공격을 통한
승리의 영광은 정규군에게 돌아갈 터였습니다.

결국 국방장관 메시미는 미셸을 참모총장에서 해임 시켜버리고 새로운 참모총장을 임명하는데 그는 포슈와 마찬가지로
1차 대전에서 중요한 인물인 죠셉 쟈크 조프르였습니다.


<공병 출신에 정치적 수완도 좋고 명석한 사람인 조프르 장군, 하지만 그가 어떻든 전임자 미셸을 자른 건 프랑스 입장에서
재앙이었습니다.>

참고로 메시미 국방장관은 포슈의 제자들 만큼 열정적인 인물은 아닌 현명한 인물이었고 국방 개혁을 이끌지만 참담히
실패 합니다. 그중 하나가 그 유명한 위장색 군복 도입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견해를 의회에서 내비쳤다가 군부랑 의원들에게 호된 질책을 받습니다.

그중 유명한 발언이 바로 이거죠.
[붉은 군복 바지를 없애자고요? 절대 안됩니다! 붉은 판탈롱(바지)은 바로 프랑스 입니다.(Never! Le pantalon rouge c'est la France!)]


<1914년 프랑스 그자체를 입은 프랑스 군과 독일군의 싸움을 그린 그림>

(2)  로렌 침공
벨기에 국왕 알브레히트가 프랑스군이 북상하길 간절하게 기다리며 절망적으로 독일군과 맞서 싸우던 그 시간 그가 존재 자체도
몰랐던 플랜 17이 발동되었습니다. (1914년 8월 6일)


가장 먼저 독불 국경을 넘은 건 보노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7군. 목표는 국경 도시 뭘루즈(Mulhouse)였습니다.
보노는 화끈하게 4000명의 병력으로 오와 열을 맞추어 집단 총검 돌격을 시켰는데 이는 성공. 8월 8일 프랑스 7군단이
뮐루즈를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에 프랑군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엘랑 비탈이 성공한 것과 또한 보불 전쟁 당시
뺏겼던 뮐루즈를 다시 수복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열병식과 승리의 환호가 도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파리를 지나는 프랑스 흉갑기병, 이들은 뮐루즈에서 이런 행진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증원부대는 이렇게 프랑스 군이 신나게 승리에 취해 있을 때 점차 뮐루즈를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4시간 간의 전투에서 패배한 7군은 승리에 취한 2일 만에 뮐루즈에서 퇴각합니다.

이런 웃기는 희극은 곧 프랑스 군부 입장에서는 치욕되었고 바로 책임자인 보노 장군은 좌천되고 해당 야전 고위지휘관들은
전원 물갈이 됩니다. 그리고 조프르는 다시 부대를 재편하여 알자스 군을 편성하여 지휘를 포 장군에게 맞깁니다.

14일 다시 포는 뮐루즈를 점령했지만, 이미 뒤벨의 1군과 카스텔노의 2군이 로렌에 대한 전면적이  공격을 하고 있었고
이 따른 피해가 극심해지자 결국 조프르는 이 알자스 군을 후방으로 빼 예비대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젠 국경 전투는 전면적인 전투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2개 야전군은 각각 바이에른 왕세자 루프레히트의 독일 6군,
폰 헤링엔의 7군과 상대해서 알자스 로렌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정예 프랑스 군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선언된 예비군이 다수였던 독일군은 프랑스군의 생각과 달리 후퇴할 생각도
심지어 방어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맹랑하게 프랑스 다수의 군대를 상대로 전면 공격을 기획합니다.
그게 바로 로렌 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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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
14/09/07 23:32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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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슈가 엘랑 비탈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건 여전히 리델 하트의 그것을 지나치게 추종하는 한국에서 심한 편입니다만, 실제론 좀 아닌데? 라고 해야 할 겁니다. 실제로 프랑스쪽 사학계의 지속적인 연구가 거듭될수록 부정되는 편이죠.
요정 칼괴기
14/09/07 23:44
수정 아이콘
포슈는 말씀하셨다시 유연한 사고의 소유가 맞고 유능한 사람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대에 포슈의 사상은 상당히 곡해 되고 있죠.
당장 제가 언급했던 1913년 야전교범의 저자이자 포슈의 제자 그랑메종도 포슈가 중요하게 언급한 상당 부분을 빼고 앨랑 비탈 같은
추상성만 엄청 집어 넣었죠.

그리고 망쟁, 드 카스텔노, 니벨, 뒤벨 모두 이런 잘못된 이해를 해서 국경 전투 자체가 프랑스 입장에서 재앙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죠.
류지나
14/09/08 03:07
수정 아이콘
군사이론가와 명장간의 간극이 아닐까 싶습니다.
14/09/08 12:34
수정 아이콘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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